인터넷 상에 ‘국개론’이라는 논리가 있다. ‘국민개새끼론’의 줄임말인데, 2007년 17대 대선, 2008년18대 총선과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한나라당 혹은 한나라당의 정책을 지지하는 후보의 대거 당선, 낮은 투표율에 대한 실망감에 대한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비논리적이고 편협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정치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최장집 교수는 먼저 87년 체제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에서 한국 제도 내 민주주의의 특징을 살핀다. 그리고 87년 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해 제도적 민주주의는 확립되었지만 보수적 민주주의로 귀결되었고, 정치가 정치답지 않은 상황, 한국의 정치체제 형성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수독점의 정당체제가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최장집 교수가 상정한 한국정치의 한계는 해방공간의 가능성이 분단과 전쟁, 냉전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이는 이념적으로 협애한 보수정당만이 한국 정치사에서 존재해왔으며 보수적인 여당과 야당은 보수적이며, 분단주의적이었다. 이는 아래에서부터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며, 최장집 교수는 이를 ‘대표된 정당체제와 대표되지 않은 사회 사이의 균열’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4`19혁명 이나 6`29선언 이후 개헌 논의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9차례의 헌법 개헌을 위한 논의는 단지 대통령의 임기와 권한에 한정되었다.
박정희 정권과 권위주의적 국가-재벌주도의 발전모델은 정권의 경제적 수행이 성공한 결과로 인해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낳았다. 이러한 이율배반성은 왜 '권위주의의 제도화'가 실패했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우리가 국가를 하부구조로서의 국가와 정부로서의 국가로 구분해 볼 때, 산업화는 국가의 물적 기반, 헤게모니를 강화했지만 정부로서의 국가 수준에서는 조숙한 민주주의가 남긴 유산과 산업화의 성공이 갖는 효과에 의해 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학생운동은 87년 체제를 이룩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80년 5`17 쿠데타는 박정희 정권의 무혈쿠데타와는 매우 다른 국민들의 광범위한 반대에 직면한다. 이는 5`18항쟁이라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저지되었고, 5`18항쟁의 실패는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권 홍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호남’ 대 ‘비호남’이라는 지역주의 구도를 형성, 이는 민주화 이후 정당체제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국정치의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87년 체제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정치상황에도 최장집 교수의 주장은 유효하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과 열린우리당의 약진으로 한 때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높아진 바 있지만 노무현 정권의 보수성, 열린우리당의 한계로 당시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열린우리당은 당 내의 다소 높은 운동적 요소를 살리지 못하였고, 4대 개혁법안 처리라는 탄핵 정국의 국민적 기대를 살리지 못했다. 또한 ‘워싱턴 컨센서스’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금융위기 이후 정권들은 신자유주의를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노동계의 입장을 전달할 정치체제가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보수적 정권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만을 강요했다. 재벌의 성장으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는 정치권은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에서 만든 규제를 철폐하였다. 이는 한국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재벌에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 정당체제의 보수성은 국민의 불신 혹은 체념을 낳았다. 이는 지속적인 투표율 하락에서 드러난다. 이는 정치체제를 불신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며, 정치체제 불신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갈등이 정치체제 안에서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40%의 투표율에서 40%득표로 형성된, 국민의 16%만이 찬성의사를 보인 정치체제가 대표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의 글을 읽은 후 다시 ‘국개론’으로 돌아가면, 제도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체제의 안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들의 의식만을 문제 삼는 것은 올바른 분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정 정당이 지지를 받아야 국민들이 똑똑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정당이 출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이는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 민주노동당이 의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냉전반공주의는 그 힘을 잃고 있지만 여전히 양당체제의 보수성은 존재한다. 또한 노동계와 사회적 약자 계층의 세력화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급진성과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꼬인 줄을 잘라버리는 알렉산드로스적 해결방법이 아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더욱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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